나는 현재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한지 6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는 소위 말하는 ‘주니어 개발자’이다. 나는 고등학교는 문과로 졸업해 수학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즈음에는 거의 수포자였다. 내가 넣는 대학의 전형에는 수학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에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서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러 다녔다. 뭐 말하자면 내 인생 대부분은 프로그래밍과 수학이랑은 거의 연관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애써 관련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방과후 컴퓨터를 쭉 배웠었고 나름 재미있어 했던 기억 밖에는 없다.
이런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개발자라는 직업을 하게 되었다. 취준 생활부터 회사에 들어온 지금까지 나는 더 잘하고 싶다는 갈증에 항상 시달렸다. 항상 뭐가 부족한 느낌. 내가 뭘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어서 방통대도 다니고, 네트워크 책도 사서 나름 열심히 보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있지만 자신감 부족과 실력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글 을 보게 되었다. ‘거물 프로그래머 5인’ 이 커리어 조언을 해주는 글인데, 나는 이 글을 보고 왜 내가 정체모를 열등감에 시달렸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과제는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컴퓨터 말고도 역사, 문학, 예술, 다른 여러 종류의 지식을 쌓는 게 중요하다.
나는 원래 책 읽는 걸 즐겨했다. 특히 문학책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발자로 취업하고 나서는 문학책을 딱 한 번밖에 읽지 않았다. 항상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아닌 강박에 시달려서 인지, 자연스레 문학은 멀리하고 기술 관련 책만 사고, 읽게 되었다. 저 문장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의 큰 과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없다. 개발자에게 기술은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여 인생의 풍요로움을 놓치지는 말자는 깨달음을 얻었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40분이 넘는 그의 연주는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사람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의 인터뷰에서 그는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0.1%도 없고, 내년 성인이 되기 전에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보기 위해 콩쿠르에 나왔다. 콩쿠르 우승과 상관없이 공부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어떤 삶의 영감을 주었다. 나의 삶에서 회사와 커리어란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의 가장 큰 과제는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은 그들이 속해있는 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이다. 소프트웨어는 그냥 그런 목적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1년전,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기록해 놓은 글을 꺼내보았다. 이렇게 적혀 있다. 청소년의 진로결정에 도움을 주고 싶다. 부당한 일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출신, 배경에 구애받지 않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최근의 나는 내 삶의 지향점을 전혀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코딩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유명한 회사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처음 코딩을 시작했을 때의 반짝반짝한 마음은 잃어버리고, 형편없는 지금 내 실력을 한탄하는 시간만 늘어났다. 예전에는 내 목표를 ‘유명한 회사에 가고 싶다!’ 라고 설정했으면 지금은 ‘내 기술로 내가 원하는 사회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는 서비스에 기여하고 싶다!’로 설정하고 싶다. 최근에 생각하는 건 ‘사는 나라와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고 배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다. 어떻게 내 기술로 내가 생각하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저 ‘코딩 잘하는 유명한 회사에 다니는 개발자'를 목표로 삼는 것 보다 ‘더 나은 사회에 공헌하는 개발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 내가 속해있는 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길 소망해 본다.
대학에 가던 안 가던 어릴 때 최대한 많은 문학, 철학을 1차와 2차 소스 모두에서 읽고 최대한 많이 글을 써볼 필요가 있다. 글쓰기가 바로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소통 방식이다. 더 효과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더 좋은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다.
에치는 컴퓨터 공학 이론 공부보다도 수학 공부가 더 가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프로그래밍은 수학에 관한 것이 아니고 전혀 관계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수학적 감각이 있다면 젊을 때 수학을 공부하는 게 좋다. 프로그래밍 학습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라고 말했다.
위 두 말은, 아직 나에게 깊이 와닿지는 않지만 충분히 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되어서 넣어보았다. 앞으로 글도 꾸준히 쓰고 수학 공부도 꾸준히 해보아야겠다. 수학과 전혀 친하지 않은 나지만 말이다. (최근 친 이산수학 과목과 디지털논리회로 과목의 성적도 아주 형편없었다..)
그래서 어떤 개발자가 되어야 할까. 미래에 있는 허상의 멋지고 능력있는 개발자의 모습을 쫓기 보다는 현재의 내 모습에서 내 기술로 더 나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법을 찾고, 내 삶의 여러 곳에서 의미를 찾는 개발자를 목표로 하면 현재의 내 모습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부터 그런 개발자가 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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